최종편집:2017.5.21 일 12:39
인기검색어
로그인 회원가입
> 뉴스 > Food desk > 전통주/와인
     
물고기는 물과 싸우지 않고 술꾼은 술과 싸우지 않는다.
시인 송경동
2016년 05월 08일 (일) 21:02:08 식품위생신문 iweekly@hanmail.net
   
   시인 송경동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가끔은’ 술을 사랑하는 놈이 되어 있었다. 배워서 마시게 된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성인이 되어보니 사람들처럼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이태백은 “석 잔이면 큰 도(道)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과 어우러진다.(《月下獨酌》중에서)” 했지만 난 남몰래 두세 번을 토하면서 먹어야 겨우 사람과 통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부터 한 잔을 마셔도 향기가 있는 술을 마시고 싶었다. 그 때부터 곰곰이 어떤 술을 먹을까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결과는 늘 번했다. 호주머니에는 늘 찬바람이 불었다. 앉게 되는 자리마다 맹하니 ‘니가 죽나 내가 죽나 보자’고 쳐다보는 희석식 소주나, 양으로 승부하는 500cc 맥주였다. 물론 그도 황송할 따름이었다.

못 먹어보았지만 성격 탓인지, 제 일 끌리는 술은 럼주였다. 나는 그 술에서 열정적인 중남미의 역사를 떠올린다. 시베리아의 칼바람을 녹인다는 보드카는 또 어떤가.

내가 사는 이 나라에는 그런 독특한 멋과 향을 가진 술이 없을까? 어쩌다 맛보게 되었던 안동소주를, 진도홍주를, 이강주를 왜 나는 떠올리지 못할까.

우리의 풍성한 술 문화

술은 신과 가장 가까운 음식이라 해서 지금도 세계의 모든 종교 양식과 제사 양식에서 꼭 빠져서는 안 되는 지상의 음식이다. 그래서 술은 마신다는 표현보다 먹는다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 지금의 화학주와 달리 세계의 모든 전통주는 주식이 되는 곡식으로부터 추출한 신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지상에서 가장 귀한 음식인 이 술을 정성껏 다뤘다. 술 한 잔을 따라 올리는 데도 예법이 있었고, 술 한 잔을 나누는 데도 주도(酒道)가 있었다.

그러기도 한 것이 이 귀한 음식을 얻기 위해서는 평민의 입장에서 보면 과도하다 싶을 만큼 많은 곡물이 필요했다. 고려시대《동국이상국집》의 시의서는 “발효된 술덧을 압착하여 맑은 청주를 얻는데 겨우 4~5병을 얻을 뿐이다.” 라는 기록이 나오고, 정약용도 백성들의 빈궁을 막기 위한 한 방법으로 전국의 소주고리(전통주를 증류해 내리는 기구)들을 걷어 들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자연스레 삼가는 마음들이 없을 수 없었다.

특히 한민족은 술과 관련해서는 축복 받은 민족에 해당한다. 일찍 발달한 농경사회와 다양한 곡물, 과실, 특용약초들의 생산이 가능해서 일찍이 풍부한 술 문화를 가질 수 있었다. 각종 음식물의 장기 보존을 가능케 한 발효 기술도 이미 고구려 적부터 발달해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덕택에 우리 민족은 어느 민족도 가지기 힘들었던 가양주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술도가를 따로 두지 않고 누구나 자신이 먹을 술을 집에서 담가 먹었다. 그러다보니 술의 종류도 셀 수가 없었고, 그 술마다 독특한 제조법과 미향을 자랑했다.

지금까지 그 향을 간직하고 전해 내려오는 술 종류만 해도 경도교동법주, 안동소주, 중원 청면주, 송죽 오곡주, 평안도 벽향주, 금산 인삼주, 계룡 백일주, 서울 삼해주, 김제 송순주, 김천 과하주, 평양 문배주? 백세주, 김포 백일주, 문경 호산춘, 경기 옥로주, 부의주, 면천 두견주, 아산 연엽주, 청양 구가자주, 한산 소곡주, 함양 국화주, 달성 하양주, 제주 오메기술, 해남 진양주, 진도 홍주, 남한상성소주, 홍천 옥선주, 함양 솔송주, 가야곡 왕주 등 수백 가지다.

그 많던 싱아’보다 더 많았던 이 술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서민의 소주였던 안동소주는 왜 그리 비싸졌는가. 남북 정상이 건배했다는 문배주는 왜 또 그리 비싼가. 이 모든 까닭이 민족 수난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양주 문화 다시 찾기까지

우리의 가양주 문화를 초토화시킨 건 일본제국주의였다. 조선총독부는 1909년 식량 수탈을 목적으로 주세법을 시행해 모든 가양주 문화를 밀주로 단속하고 과도한 세금을 물리는 한편, 일본식 청주와 일본 소주만을 먹기를 강요했다. 중일전쟁과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부터는 식량난을 이유로 순곡 소주의 제조마저 금지하고 주정을 물에 탄 희석식 소주만을 보급케 했다.

해방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허가받은 소수의 독점 화학주 판매업자들뿐이었다. 1971년에 이르러서야 쌀약주, 쌀막걸리 등 순곡주가 재등장할 수 있었다. 1985년에 이르러서야 문배주와 두견주, 법주 등 전통 민속주 13종의 제조가 허가 되었고, 전주 이강주, 한산 소곡주 등이 ‘술’이 아닌 ‘문화재’로 지정되어 수공업적인 제조가 가능하게 되었다.

누구나가 자신의 멋과 풍류를 담은 술을 담가 먹을 수 있는 가양주 문화가 ‘허가’된 것은 1995년에 이르러서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술을 빚어 먹는 풍류와 갸륵한 마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브랜드나 위스키, 코냑보다 낯선 게 우리 술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 삶의 정성과 깊이와 색이 담긴 술을 담가 먹을 쑴을 꾸고 있다. 누룩을 빚고, 엿기름을 말리고, 찹쌀이거나 맵쌀을 덖어 섞은 후 아랫목의 헌 이불이거나, 땅 속에 파묻어 두고 술 향기가 익을 날을 기다릴 것이다.

그 때쯤 올 어떤 아름다운 사람을 기다리며 그에게 나눠줄 내 가슴도 그 안에서 발효되게 할 것이다. 제 안에 곰팡이꽃을 피워 스스로 썩은 누룩이 10년이 가고, 20년이 갈 술 한 모금을 만들어내는 경이로움을 맛보는 것. 그 만큼은 되어야 진정 술맛을 아는 술꾼이 되었다고 자부는 할 수 있진 않겠는가.

 

 

[AD] [속보] 의료실비보험 최저가 1만원대로 가입요령
[속보] 운전자보험 최저가 1만원으로 가입요령
[추천] 메리츠화재 100세만기 의료실비보험
식품위생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식품위생신문(http://www.fooddesk.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개인정보보호정책 | 구독신청 | 광고안내 | 회사소개 | 이메일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제호 : 주간 식품위생신문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4 나길 46 덕성빌딩 2층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서울 다06567
발행·편집인 김현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김현용 | Tel (02)704-7114 | Fax (02)706-6269 | 등록일 : 1992년 5월 27일
Copyright 2007 식품위생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iweekly@hanmail.net